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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숭례(지영) 제목 : 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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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상쾌한 서녘 하늘은 저녁노을이 곱게 번져 손을 내밀면 금새라도 봉선화 같은 꽃물이 함빡 들을것만 같다.돌담을 타고 올라간 호박 넝쿨마져 붉게 물이 들었는지 호박꽃도 유난히 아름답다.
노을에 젖은 호박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린 시절이 떠 오른다. " 어이 호박"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면 시침을 뚝떼고 있다가 다시 돌아서면 "꽃"이라 부르며 킬킬거리던 동네 오빠들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나는 호박꽃이라고 놀려대던 소리가 싫어서 많이도 울었다. 아니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장난꾸러기들이 지나가는 기척만 있어도 숨어 버렸다.
삼십년의 세월들은 너무도 많은 내 인생을 변화 시켜놓았건만 지금 바라보는 호박꽃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데가 없다.
호박꽃? 왜 하필이면 호박꽃이라고 불렀을까.
정열의 여왕 장미도 있고, 울안에 가득히 피어 향기도 그윽한 백합이나, 그도 아니면 담 밑에 옹기 종기 피어나던 채송화,봉숭아도 있는데 그런 꽃을 두고 천둥맞게 호박꽃이라니...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는 꽃들 중에서 네게 붙여진 여학교 시절의 호박꽃 별명은 큰 상처가 되기도 했고,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내 수수한 어린 마음은 남자들 소리만 들리면 늘 기를 못폈다.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그 꽃이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자식을 많이 두셨던 아버지는 언젠가 이런 말씀을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버지는 딸을 낳으면 뜰에 꽃나무를 심으셨고, 아들을 낳으면 장작을 패셨다며 그래도 어머니가 오뉴월의 녹음속에 고운 빛깔의 장미 꽃 같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장미처럼 가시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아마도 딸을 많이둔 지난날의 서운하신 마음을 은근히 이렇게 달래려 함이 였으리라
창문새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바위고개 숨어서 님을 기다린다는 노래를 부르던 목련꽃 같은 큰언니. 몸이 약해 늘 툇마루에 앉아서 동화책을 보던 해바라기처럼 멋없이 키만 멀슥한 해바라기를 닮은 둘째 언니. 두리 뭉실하고 펑퍼짐한 몸매로 이미자의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르던 동백꽃 같은 세째언니. 소월의 시를 여울물 같은 맑은 소리로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던 국화 향기같은 동생. 지금은 까만 수도복에 정결한 모습으로 수녀원에서 살고 있는 코스모스처럼 귀여운 막내. 그 막내는 언제나 나를 들국화 같은 언니라고 불러 주었다.
이런 언니들과 동생들 틈에 끼어 있다 보니 위나 아래로보나 내가 이런 저런 일로 남자들의 밉지 않은 놀림의 대상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을 미쳐 깨닫지 못했나보다.
장난꾸러기 오빠들은 개구멍으로 들어와 애 호박에 말뚝을 박아놓고는 오이를 따가도 아버지는 모른척 하시고, 자식 기르는 사람은 입찬소리를 않아야 한다 하시며 형제간은 한 넝쿨에 열린 호박들이니 우애 있게 지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사람들은 흔히 호박꽃도 꽃이냐고들 한다.
여름 아침이면 함박만한 웃음을 가득 담은 종처럼 생긴 노란 꽃들이 피어난다. 다른꽃들처럼 예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스럽고 풍만해 보인다. 꿀벌들은 새벽부터 윙윙거리며 꿀을 따기도 하고 꽃 가루를 다리에다 묻혀 가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이면 넓적한 잎새 뒤에서 애호박을 기물답게 키우기도 하고, 가을이면 종가 댁 맏며느리 같은 몸짓으로 치장도 할것 없이 울퉁 불퉁 생긴대로 익어갔고 앙상한 줄기만 남아 있게 되면 달덩이 같은 탐스런 늙은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는 동글동글한 애호박을 뚝 따다가 부침개질을 하면 향긋하고 상큼하면서 풋풋한 맛이 난다. 누름국을 할적에는 꾸미를 만들어 넣으면 한결 입맛을 돋구어 준다.
그뿐이 아니다.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은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부석한 몸의 부기를 빼기 위한 약재로는 그만 이란다.
우리몸에 체액을 중성으로 유지시킨다는 건강 식품을 만드는데도 호박을 당해 낼만한 재료가 없단다.
이렇게 요긴하게 쓰여지기 위해서는 뙤약볕에 따가움을 참아내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수많은 시간들의 고통도 이겨냈으리라. 사람으로 따지자면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고, 쉽게 절망도 굽히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할 줄 아는 마음씨일 것이다.그렇게도 듣기 싫던 호박꽃소리가 세월을 거듭 할수록 애착이 간다. 그것은 여리디 여린 애호박의 인생길에서 어느새 누렇게 익어가는 늙은 호박으로 변모해 가는 불혹을 넘기는 삶의 길목에 접어들어서 인가.
역경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헤쳐나가는 호박 넝쿨이 지니고 있는 강인함을 닮고 싶고 호박이 지닌 덕성을 배워가고 싶다.
호박꽃이라 부르고 달아나는 오빠들의 뒷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있는 나에게 사람이란 만나면 만날수록 보면 볼수록 정이 가고 친해지고 싶어지듯 끌어당기는 멋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지. 그것은 외양의 아름다움이 아니고 마음이 곱고 행실이 반듯해야 된다며 호박꽃이라 불러도 웃어 보일수 있는 너그러운 호박꽃으로 피라 시던 어머니.
옛 추억 속의 오빠들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요염하거나 진한 향기는 없어도 실한 열매를 맺는 호박꽃처럼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을 생각이나 할까
"어이 호박~꽃"
이제는 "어이 호-박"이라고 부르는 소리만 이라도 듣고 싶어진다.
편안하고 따뜻한 "호박꽃"으로 오래 피어 있었으면.....


 
 
 
 
  : 명임님^^* 고추장 발송했습니다.
  : 가을이 오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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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꽃님^^* 귀한걸음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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