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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에 빨간집
그림을 그린다.
녹색의 푸르름은 불어오는 훈풍에 춤을 추고, 아카시아 꽃잎속에 고향집은 가뭇 가뭇 보인다.
흐르는 시냇물에 손 발을 담그면 온몸으로 퍼져오는 시원한 물줄기와 이끼낀 파란 빛깔의 조약돌을 비추는 저녁노을은 고향의 산 마을을 담은 한 폭의 수채화다.
시멘트로 쌓아올린 회색 도시의 삭막한 모습보다는 유연하고 아늑하게 감싸주는 어린 시절에 뛰놀던 고향집에 마음이 머무는 것은 왜일까.
도심속인데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촌티가 난다. 지금은 주위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우리 동네에도 번듯한 이층집들이 지어지긴 했어도 어딘가 모르게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게 모여있는 작은 집들과 밭이랑 사이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사계절 대문을 활짝 열고 오가는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속에, 노인들과 아이들의 마음까지 한데 어울려 사는 이곳으로 이사 온지도 십 년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내 고향집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 전개되던 60년대에 초가집을 헐고 슬레이트를 올리고 그 위에 빨간색 페인트칠을 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지붕은 빨간색을 칠한 낡은 집이지만 넓은 마당에는 텃밭이 있고 은행나무 밤나무가 있어서 시도 때도 없이 울어주는 까치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게 해주는 하루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는것이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재래식인 화장실을 눈, 비가 오는 날이나 한밤중에 가려면 마당과 수돗가를 지나 집 뒤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무서운 생각에 아이는 이사 가자는 소리를 자주 한다. 깨끗한 집에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편안하고 푹신한 의자에 누워 텔레비젼도 보고 싶단다.
서너 평되는 텃밭에는 비료대신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와 낙엽을 모아 놓는 두엄 때문에 파리가 득실거리는 지저분함도 있다. 그 대신 싱싱한 무공해 채소들이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식탁위에 올려진다.
아이는 두엄속에서 비집고 나온 지렁이에 놀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나는 빙긋이 웃으며 지렁이를 잡아서 형제들과 함께 고기 잡으러 갔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준다.
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만든 문명 안으로 들어가며 자연을 마구 훼손 하면서도 서구식으로 근사한 빌딩을 짓는다. 하늘까지 닿을 듯한 옥상 위에는 나무와 꽃을 심어놓고 정서를 함양하기 위한 휴식처라고 한다.
결혼하고 분가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마을. 이따금씩 차를 타고 지날 적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아카시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그 곳에도 어느새 도시의 밀물에 밀려 아파트가 들어서 있음을 발견하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객지도 마음 붙이고 정이 들면 고향이라 한다.황사현상을 방불케 하는 송화가루가 장독대에 쌓이는 날이면, 콩가루 다식을 만들어 주시던 옛일이 생각난다.
또한 동생을 업고 은행나무 밑에서 읍내를 바라보며 외갓집에 다니러 가신 어머니가 사나흘이 지나도 오시지 않아, 목을 길게 늘어 뜨린 사슴이 되어 기다리던때가 엊그제 같다.
어느새 나는 어머니 나이가 되어 이제는 어머니대신 학교간 아들이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언덕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귀신 이야기를 해 주던 언니. 화장실 밑바닥에 있는 달걀 귀신이 무서워 요 위에다 실례를 하고, 크게 꾸중을 듣고 키를 쓰고 옆집으로 소금을 얻으러 갔던 추억들을 어찌 잊으랴. 그러한 고향을 잊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마음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이 집이 그때 그 시절을 많이 닮은 까닭에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의 손길과 형제들의 희노애락이 잔물결이 되어 넘실거리는 고향집 같은 이곳.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이사 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넓은 마당에서 친구들과 공놀이도 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모아 낙엽타는 냄새가 미풍에 실려 가는 늦가을에는 시( ) 한편을 읽을줄도 안다. 눈이 쌓이는 겨울이면 하얀 눈길을 걸어도 보는 언덕위에 빨간 집이 그 무엇 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이란다.
빨간 양철지붕이 낡아서 바람에 짤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욕심 없고 허세없이 순박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 곳에서 배우고 있다. 오손 도손 의좋고 따뜻한 인정속에 살아가는 이웃이 있기에 더없이 행복을 느끼며 산다.
초록빛 바람이 머무는 고향 마을에는 부모님이 키워 주신 동심의 마음들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으리라.
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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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추수 하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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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추수 하시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