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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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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숭례 |
제목 : |
수필 한편 올려도 되지요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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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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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백목련 2010년 01월 05일 (화) 충청타임즈 webmaster@cctimes.kr 반숭례 <수필가> 들길을 걷는다.
붉은 노을이 길게 누운 들녘에 지나가던 기러기 떼가 때마침 내려와 앉는다. 마음씨 착한 농부가 남겨 놓은 벼 이삭을 주워 먹으려 수백 마리의 기러기 떼가 이 논 저 논을 옮겨 갈 때마다 날갯짓은 장관을 이룬다.
붉은 노을빛, 바람과 하늘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이 있는 미호천 변. 무진장 바라보아도 관람료 내라는 이 없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가 머물러 있고 내 가슴 안에 머물러 있는 서정이 긴 여운으로 남아 하얀 물거품 이는 비누칠하는 곳이다.
기러기가 곡식을 주워 먹고 떠난 어두컴컴한 들녘에 물오리가 숨을 죽이고 다닌다. 지나가던 기러기에게 양식을 내어주고 남은 곡식이래야 쭉정이뿐일 텐데 그것으로나마 끼니를 채우기 위해서다. 남을 배려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물오리를 두고 나는 오 서방 이라 부른다. 미호천 변을 산책하다가 한 줄로 코를 박고 있는 물오리 떼를 보면 장난기가 발동한다. 손뼉 치며 오 서방 하고 소리치고 달려가면 놀라서 푸드덕거리며 일제히 날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이 짓을 하니 이제 물오리들은 감각이 무뎌져서 아무런 동요가 없다.
마른 풀잎 떨어진다. 떨어지는 그 아픔을 외면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제와 오늘이 가고 다시 석화리에서 새 아침을 맞는 일이 왜 이다지도 시린가.
온 누리에 퍼지는 햇살은 커피향이다. 안개 속에 쌓인 들녘은 고즈넉한 산사의 향내다. 갈대숲을 지나는 기차와 말없이 흐르는 미호천을 한가로이 떠 노는 물오리 한 쌍. 햇살이 내려와 쉬었다 가는 모래밭. 소리 없이 내려앉은 눈밭에 앙증맞게 찍혀 있는 고라니 발자국. 동네 끄트머리 하얀 지붕 언덕을 넘듯 펼쳐져 있고, 자연 속에 그림이 되어 서 있는 정자와 아까시 나무들. 늘 손짓한다.
머지않아 도시의 감정에 휩쓸려 변화하는 늪 속으로 잠기면 과거와 현재에 공존하는 풍경은 퇴색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날수록 가슴 안에 진하게 다가오는 추억으로만 남으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진정 소중한 것이 무언지 아는 미호천 변 들녘엔 쓸쓸함만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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