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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 엄마 제목 : 야생초 편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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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쥐란 놈들이



날씨가 어찌나 더운지 오후에 운동하러 나갔다가 더위만 잔뜩 먹고 들어왔구나.

본격적인 초여름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이번 주부터는 온수 목욕도 중단되었는데,

때맞춰 날씨가 더워지니 다행이구나 싶다. 그런데 화단에 옮겨 심은 야초들이

땡볕을 견뎌내지 못해 안쓰럽구나.

지난주 큰 공사를 벌여서 화단의 폭도 조금 늘이고 이웃 사동에서 못 보던 풀도

몇 포기 뽑아 심고 했단다. 지난번 이후 새로 옮겨 심은 풀들을 적어 볼까?

털개지치, 선괭이밥, 조밥나물, 왕고들빼기, 쇠뜨기, 봄맞이꽃...., 아직 이름을

밝혀내지 못한 것도 몇 가지 있구, 그리고 메리골드와 하니곰 모종을 원예부

에서 몇 포기 얻어 심기도 했다. 국화 두 포기를 어렵사리 얻어 와 심어 놓았는데

다음날 가 보니 생쥐란 놈들이 잎을 모조리 갉아먹고 밑동만 삐죽이 남아 있는 게야.

신기하게도 다른 풀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국화만 갉아먹었더라구. 전에 원예부

에 있을 때도 쥐란 놈이 밤새 모종들을 하고 갉아먹어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건물이 온통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되어 있어서 쥐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웬걸?

밤이 되어 인기척이 끊어지면 교도소 마당은 온통 쥐 세상이 되고 만단다. 쥐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와 이리저리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데, 할 일 없는 날은 창 밖으로

이놈들 노는 꼴을 바라다보는 것도 큰 재미지. 어떤 때는 먹다 남은 건빵 따위를

던져 주면서 놈들을 불러모으기도 한단다. 사회에 있을 때는 쥐만 보면 징그럽고

더러워서 피해 버리고 말았는데, 여기 들어와 쥐를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젠 정이

들어서 오히려 쥐를 만나면 강아지 부르듯이 불러서 같이 놀자고 할 정도야.

지난번엔 담요를 털러 나갔다가 소 측에서 담 밑에 놓은 쥐덫에 큰 쥐 한마리가

걸려들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기에, 쥐덫을 주워들고 코끝에 닿을 듯 가까이 들여다

보니 놈이 그렇게 귀엽고 가여울 수가 없더라구. 한참을 들여다보다 전에 원예부에

있을 때 놈들을 너무 많이 잡아 죽인 것이 마음에 걸려 그만 녀석을 쥐구멍으로

놓아주고 말았단다. 어떤 장난꾸러기 재소자는 쥐를 잡아 목에다 끈을 묶어서

운동시간에 마치 개 데리고 산책하듯이 끌고 다니기도 한단다. 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징역 생활을 깨기 위한 희극들이지.

부쳐준 영어 성경은 잘 받았다. 매일 조금씩 보고 있는데, 문장도 현대식으로

쉬운 데다가 국역으로 읽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올 땐 기쁨에

겨워 무릎을 치기도 한단다. 지난번 고해성사 때 신부님께서 루가복음 완독을 내려

주셨기에 요즘은 그 부분을 매일 보고 있다. 이 복음의 향기가 네게도 미칠 수 있었

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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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아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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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 엄마
야생초 편지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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