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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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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엄마 |
제목 : |
야생초편지 - 11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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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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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모듬
지금쯤이 단풍구경의 최적기가 아닌가 싶다. 저녁 해질녁에 바라보는 건너편
산의 단풍은 비록 단조로운 산괴 하나에 불과하지만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노란 들국화와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빚어내는 알록달록한 모자이크가
따가운 햇살 아래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그러나 시선을 옆으로 조금만 돌리면
우중충한 콘크리트 더미의 연속.
이 세상은 어디를 보나 묘한 대비의 연속이다. 한번 더 눈을 돌리면 9척 담장 밑에
내가 가꾼 꽃밭에 철모르고 싹이 튼 들풀들이 가득하다. 오늘 그것들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서리 맞아 거세어지기 전에 먹어 버렸단 말이다. 운동시간에 옆방의 이성우
선생님과 함께 (이 선생님은 꽃밭의 또 다른 주인) 쭈그리고 앉아 꽃밭에 멋대로
자라난 온갖 잡풀들을 다 뜯었다. 다 거두니 세숫대야로 하나 가득. 저녁에 끓는 물을
얻어다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놓았다.
이름하여 들풀모듬. 먹으면서 세어 보니 무려 열네 가지 풀들이 섞여 있더구나.
명아주, 쇠비름, 쇠별꽃, 뽀리뱅이, 부추, 제비꽃, 조뱅이, 꿀풀, 씀바귀, 민들레,
꽃마리, 달맞이꽃, 질경이, 방가기똥, 아무래도 제철 풀이 아닌 것이 많아서 조금
질기더군. 그래도 먹어 본 이들은 모두 기가 막히다고 이구동성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
이제 우리 사동 사람들은 내 덕분에 들풀모듬에 익숙해졌지. 오늘로써 싹쓸이를
했으니 또 풀 맛을 보려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하겠지.
<미술공예>란 잡지를 넣었는데 네가 원래 구독하는 것이냐? 내 기억에 네 전공은
패션 디자인이었는데 요즘은 공예 쪽에도 관심이 많은 모양이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꼼지락거리고 무얼 만드는 것이라면 이 오빠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란다. 나는 참다운
공예의 전형을 교도소 안에서 본다. 왜냐하면 이 안에는 사회에서 처럼 작가가 원하는
재료를 마음대로 구할 수 없기 때문이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이 안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인 라면상자, 밥풀, 종이를 가지고 생활에 필요한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 쓴다. 책꽂이, 책상, 선반, 책걸침대, 안경집, 바둑판 등등.(이런 물품
들은 불법소지물로 정기 검방 때에 재수 없게 걸리면 다 빼앗겨 버리지. 공들여 만든 것을
빼앗기면 억울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빼앗기면 또 만들면 되니까.) 징역쟁이들의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너도 한번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가느다란 칫솔대에 여체를 완벽
하게 조각하질 않나, 밥풀을 이겨 탐스런 돼지를 만들지 않나..... 만약 이러한 물건들을
모아 밖에서 전시회를 열면 큰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징역에서 만들어 낸
물건들이 이토록 정교하고 기상천외한 것은 아마도 주체할 수 없는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는 곳이 따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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