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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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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엄마 |
제목 : |
야생초편지 - 13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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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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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듬풀 물김치
날씨가 무척 더워졌다. 햇볕이 뜨거워 운동하는 게 오히려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그보다 상추밭에 물을 주지 못해 걱정이다. 상추는 물을 먹고 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을 자주 주어야 하는데.......
우리 상추밭 얘기를 들려줄까? 연초에 올해 농사 계획을 짤 때 기존의 야생초
화단 옆에 좁다란 밭고랑을 4개 만들어 상추와 들깨를 심기로 했단다. 일단 어찌
어찌 해서 밭은 만들었는데 씨를 구하지 못해 두 달 남짓 놀리고 말았지. 너무
늦어져서 차라리 다른 야생초나 심어 버릴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화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추 싹이 여기저기 돋아나 있는 게 아니겠어? 분명히
씨를 뿌린 적이 없는데 말이야. 알고 본즉 작년 어디에선가 씨가 날아들어 돋아난
상추 몇 포기에서 씨를 받아 갈무리해 둔 게 있었는데, 내가 이것을 잃어버리고 만
거야. 그런데 옆 방의 이 선생님이 작년에 상추씨 바심하고 남은 찌끄러기를 버리지
않고 두었다가 그냥 장난삼아 뿌렸던 모양이야.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위에
작년에 갈무리해 둔 온갖 야생초 씨들 - 비름, 달맞이꽃, 산부추, 명아주, 황금 등 -
을 무더기로 뿌렸지.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민 게 상추였기 때문에 처음엔 아무래도
상추 위주로 손질을 했지. 그런데 야생초 싹들이 줄줄이 얼굴을 내미는 통에 이들을
모두 살리자면 상추를 옮겨 심지 않으면 안 되었단다. 해서 튼튼한 상추 모종들은
모조리 새로 만든 밭에 옮겨 심어 겨우 의도했던 상추밭을 만들게 된 거야.
화단은 주로 이 선생님과 내가 가꾸는데 경작 방법에 관한 의견 대립으로 곤란한 때가
적지 않아. 이 선생님은 상추, 들깨 등 재배 채소를 중히 여기고 그것 한 포기 살리기
위해서 주변의 야생초들을 깔아뭉개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하시는데 나는 그것이 못마땅
해서 번번이 제동을 걸지.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상추 옆에 있는 풀들에 이파리가 제법
달리면 내가 다 따 먹을 테니 미리 제거하지 말아 달라고. 내게는 상추나 비름이나
명아주나 다 똑같은 야채로 보이거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야생초 사이에 상추가 나면
오히려 상추를 뽑아 버리는데, 이 선생님은 주변의 야생초를 뽑아 버리려 하니 내 속이
편하겠어? 상추야 상추밭에 집단적으로 재배하고 있으니 상추 때문에 야생초 화단에
있는 야생초를 다친다는 것은 결코 안 된다는 게 내 입장인데, 이선생님은 내가 "토깽이"
처람 풀만 뜯어먹는다고 언제나 마뜩찮은 눈길로 보고 있는 거야.
이선생님과 함께 화단을 가꾸면서 두 사람의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느낄 수밖에 없어. 나는 단일경작을 싫어하는 반면, 이 선생님은 좋아하는 야채 한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키우고 나머지 풀들은 되도록 제거하거나 거름 정도로 쓰려 하지.
나는 화단에 저절로 나거나 씨뿌려 돋아난 온갖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다
어느 정도 자라거나 촘촘해지면 그때그때 솎아 먹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가 없는
거야. 내가 풀 좀 뽑아 버리지 말라고 하도 사정을 하니까 이 선생님은 내가 보지 않을 때
눈에 거슬리는 풀들을 슬쩍 뽑아 버리곤 하지. 하지만 운동시간에 나가 화단 살펴보는 게
내 일인데 그걸 모를 리가 있니? 한 두 주 전쯤엔 화단 한 귀퉁이를 뒤덮다시피 했던
달맞이꽃 어린것들을 한 바구니 캐서 나물로 무쳐 먹었단다. 지금은 그 자리에 비름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지.
3일 전에는 화단 정리도 할 겸 웃자라거나 촘촘하게 난 풀들을 가짓수대로 솎아 내었다.
으례 하던 대로 무쳐 먹을까 하다가 한 번 물김치로 담아 보기로 했다. 한 달 전에
돌나물로 물김치를 담가 먹었더니 맛이 아주 좋길래, 이번에는 각종 풀들을 모듬으로
담가 본 거지. 이름하여 모듬풀 물김치. 오늘 점심식사 때 뚜껑을 열었는데 맛이 일품이다.
조금 씁쓰름했지만 시원한 게 오후의 더위를 말끔히 씻어 주더구나. 이곳의 젊은 동료들도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꺼리는 눈치이더니 일단 맛을 보고 나서는 모두들 좋다고 난리야.
사실 모듬풀 물김치는 기존의 무, 배추 물김치와 비교해 볼 때 영양가나 신선도, 기력(氣力)
에 있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월등하다. 자연상태에서 천지의 기를 듬뿍 받고 자라난
야생초를 십여 가지 뒤섞어 발효시킨 것이니, 밋밋한 배추 한 가지로 만든 것과 비교가
되겠니? 이번 물김치에 들어간 재료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볼까? 씀바귀, 민들레, 달맞이
꽃, 명아주, 고들빼기, 제비꽃, 뽀리뱅이, 조뱅이, 방가지똥, 질경이, 박주가리덩굴, 돌콩,
닭의덩굴, 들깨, 사철쑥, 개망초......., 그 밖에 몇 가지 더 들어갔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구나. 화단에 있는 것들을 다 뜯어 모은 거나 다름없지. 너도 한번 맛을 볼 기회가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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