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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어라, 오이 덩굴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솥에 감자을 넣고 찔 때 감자의 느낌이 꼭 이럴 거야.
특히 이곳은 콘크리트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이라 낮 동안 햇빛에 달구어진 천장이 저녁이면
후끈후끈 열기를 뿜어내기 때문에, 방안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보다 머리가 더 뜨겁지.
낮에는 아무리 더워도 문 열고 복도에 나가 왔다갔다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지만, 밤이
되면 꼼짝없이 갇혀 있는 데다 사방이 깜깜하니 더더욱 덥게 느껴지는 것 같아. 그래도
나는 몸이 마른 편이라 더위를 잘 견디는 편이지만 살집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아주 힘들어
하지. 우리 사동에선 몸이 비대한 김병주 선생님과 박홍순 씨가 저녁만 되면 맥을 추지
못한다. 나는 정 견디지 못할 땐 바가지로 물을 떠 끼얹기도 하지만, 보통은 일에 집중함
으로써 더위를 잊어버리는 방법을 쓰고 있지. 집중마저 안 되면 아예 잠을 청하구.
여기 이 그림이 무언지 알겠니? 맞아. 오이야! 오늘 운동장에 나가 보니 오이 덩굴이 매어
논 줄을 벗어나 아래로 쳐져 있길래 바로잡아 주다가 그만 선단 부분이 부러지고 말았다.
한창 오이가 줄줄 달리고 있는 마당에 이런 참사가 벌어지다니!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방
으로 가져와 종이에 그려 보았다. 이렇게 끄트머리를 잃어버린 오이는 바로 밑으로 열매
대여섯 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맛은 아직 못 보았다. 처음에 달린 것은 누군가 몰래
따 먹어 버렸더라구. 해서 요즘은 비교적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지만 재소자가 운동시간이
지나면 들어와야지 어쩌겠냐.
지금 자라고 있는 오이 덩굴은 다 큰 것 두 개와 이제 막 덩굴을 뻗는 것 한 개가 있다.
지난 주일에 씨를 받기 위해 일부러 늙은 오이가 되도록 놔둔 것을 따서 쪼개 보았다.
이놈도 누군가 따 가지 못하도록 오이를 호박잎으로 싸서 위장해 두었기에 겨우 건진거
란다. 헌데 속을 갈라 보니 이게 웬일! 씨가 하나도 없는 거야. 팔뚝만 한 오이에 씨가
하나도 없는 거야. 팔뚝만 한 오이에 씨가 하나도 없다니! 버리기가 아까워 썰어서 소금에
절인 뒤 고추장에 버무려 먹었는데, 맛이 없어서 얼마 먹지 못하고 다 버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무쳐준 늙은 오이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는데...... 나의 입맛이 변한 건지 조리
방법이 틀린 건지 잘 모르겠다.
오이나 호박 덩굴의 생장점 부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물주의 창조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초록색의 그 작은 덩어리 안에 앞으로 피어날 것들이 모두 정밀하게 압축되어
있으니 말이야. 이게 어찌나 잘 자라는지 한창 자랄 때는 하룻밤에도 10센티 이상씩 자란
다. 그림에 볼펜으로 대충 얼버무려 놓은 오이덩굴 끄트머리를 손에다 들고 밝은 곳에서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정밀함과 복잡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린 시절 시계
꾸껑을 처음 열어 그 안을 들여다봤을 때의 감동과 비슷하다. 그렇게 작은 덩어리 안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의 꽃차례와 덩굴손이 축소모형(miniature)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말야.
이것이 밑으로부터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고 점점 커져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거지.
오이 덩굴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바로 덩굴손이다. 가능하다면 저속 카메라를 가지고
덩굴손의 생장과 운동을 연속 촬영해서 보고 싶구나. 식물의 덩굴손은 곤충의 더듬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덩굴손의 감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볼까? 한번은
덩굴이 뻗어나가는 길에서 약간 빗나간 곳에 젓가락을 꽂아 놓았다. 다음날 가 보니
덩굴손이 그 젓가락을 찾아가서 휘감고 있더라구. 이 실험을 반복하여 해 본 결과,
덩굴손은 능동적으로 자기가 감아야 할 대상을 찾아 나선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리고
덩굴손은 나선형을 그리며 뻗어 나감으로써 자기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물체를 매달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침대나 자동차에 있는 용수철 스프링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식물은 동물 이상으로 능동적으로 자기 삶의 조건
들을 만들어 내고 또 삶의 진로를 개척해 나간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내가 특수한 영적
능력이 있다면 식물이 지능과 감정을 가진 생물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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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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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새벽 우리집 농원 모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