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야생초밭 선아, 지난번 어머님 모시고 면회 왔다가 서울엔 잘 올라갔는지? 길이 멀기는 하다만 차 안에서 신록의 산하를 내다보는 재미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 비가 자주 내려서 산야의 어린 풀들이 신명이 났다. 내가 만든 작은 꽃밭에 옮겨 심은 야생초들이 이젠 완전히 뿌리를 내려 달콤한 봄비 속에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단다. 확실히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그냥 물이 아니다. 맑은 날에는 꽃밭에 아무리 열심히 물을 주어 봐야 시들지만 않을 뿐 그저 그런데, 비만 오면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이 풀들이 아우성이야. 비가 온 다음 날 운동 나가서 풀들을 들여다보면 말쑥한 자태로 하루 사이에 부쩍 자란 키를 자랑하고 있거든. 하긴 천지의 기를 담뿍 머금은 물을 원 없이 맞으니 어찌 좋지 않으리! 그동안 내가 여기저기서 떠 옮겨 심은 것을 적어 보겠다. 냉이, 제비꽃, 괭이밥, 씀바귀, 마디풀, 방가지똥, 지칭개, 개쑥갓, 황새냉이, 벼룩나물, 명아주, 쑥, 사철쑥, 상치, 꽃마리, 그리고 씨를 심어 싹을 틔운 나팔꽃과 사과나무, 뽕나무....... 지금 제비꽃은 다 지고 씀바귀꽃만이 한창이다. 그 밖에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것 두세 가지가 더 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본 다음 알려줄게. 웬 꽃 이름을 이렇게 잘 아냐구? 사실은 본격적으로 야생화 공부를 하려고 이번 달에 거금 5만 원을 투자해 야생화 도감을 하나 샀단다. 참한 출판사 에서 최근에 발행한 <<산과 들의 계절 식물>> 이란 건데, 지금까지 나온 도감 중에는 가장 좋은 것 같지만 왠지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특히 그림이 영 맘에 안 들어. 여러 사람이 분담하여 그렸기 때문에 일관성이 없고 또 정밀도와 묘사력이 서양의 것들과 비교해 많이 뒤진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저자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인데 엄청난 일을 해냈더군. 그분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