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얼굴들 - 요료법1 보리밥에 꽁치 한 도막 먹고 소금으로 양치질을 한다. 하늘색 법무부 담요 위로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팔베개 뒤로 하고 한 평 넓이 천장을 올려다본다. 담배는 끊은 지 오래고 티브이도 말동무도 없다. 아직 조금은 더 기다려야 거미 친구들도 얼굴을 내미리. 언제나 이맘때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창살 너머 노을진 하늘을 바라다본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공 가득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선아, 이곳의 하루 중 가장 스산한 때가 바로 이떄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산에 해가 떨어질 때까지의 몇십 분. 아마도 노을빛에는 사람의 심금을 건드리는 특별한 파장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요료법을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반이 넘었지만 별 뚜렷한 자각증세가 없다. 있다면 전에보다 입맛이 좋아졌다고나 할까? 나는 무슨 치료 효과보다도 평상시의 건강 유지와 질병예방 차원에서 하고 있으니 남에게 들려줄 만한 호전반응이 없다. 물론 기관지와 허리에 지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란다. 내 옆방의 이 선생님도 내가 꼬드겨서 같은 날 시작했는데, 선생님은 워낙 병이 깊어서인지 아직 차도가 없더군. 선생님은 두어 달 해 보고 효과가 없으면 그만둘 란다고 말씀하시지만 칠십 노인의 깊은 병이 겨우 두어 달 만에 차도가 있겠니? 계속하시도록 옆에서 설득해야겠다. 심장병, 고혈압, 치질 등을 앓고 있는 노인에게 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니? 약이 없어서 고치지 못하는 병이 아닐진대 차라리 돈 안 들고 무해한 요료법이나 민간요법을 써보는게 낫지. 그런데 사실 요료법(우리는 이 안에서 일본말로 한 잔 이라는 뜻인 이찌고뿌로 통한다)이 쉬운 것이 아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잘도 했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거부감이 생긴단다. 이것도 완전히 습관이 되기까지에는 힘든 적응 과정이 필요한 모양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찌고뿌한 뒤에 전날 만들어 놓은 쑥 우린 물을 마심으로써 입가심을 한단다. 사실 이찌고뿌보다도 쑥 우린 물이 적응이 되어서 그것을 마셔야 속이 개운해 지는 것 같다. 쑥은 지난 단오 때 고생 끝에 여기저기서 뜯어서 말린 것이 조금 남았는데, 아껴 먹으면 이번 겨울은 보낼 것 같구나. 야생초 화단 옆에 아예 밭고랑을 하나 파서 쑥밭을 만들어 놓았단다. 얼마 전에 쑥뿌리를 캐다가 잔뜩 묻어 놓았으니(운동장에서 맨손으로 캐다가 손이 다 까졌음) 내년 봄엔 풍성한 수확이 있을 것이다.(큰일이다. 징역나갈 생각은 아니 하고 내년 농사지을 궁리만 잔뜩 하고 앉았으니......) 요즘 컨디션과 기분 같아서는 매일 이찌고뿌와 쑥 우린 물 한 잔만으로도 일 년 내내 잔병 따위는 얼씬거릴 것 같지가 않구나. (그런데 이런말 하고 나면 꼭 병난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