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이 아니라 완존히 똥밭 어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 앞으로 한 달간 본격적인 장마라 한다. 열무씨를 뿌려 놓았 더니 이제 겨우 떡잎이 났는데, 장마비를 견뎌 낼까 모르겠다. 봄에 심었던 열무는 벌써 싹 뽑아서 물김치를 한 번 담가 먹고 새로 뿌린건데, 아무래도 장마비와 여름벌레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 쑥갓을 좀 넣었더니 맛이 한층 시원하고 좋더라구. 선생님들이 모두 맛있다고 입맛을 다셨단다. 이곳의 텃밭은 주로 나와 이 선생 님이 가꾸는데, 이 선생님이 똥거름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어떤 때는 짜증이 날 지경이다. 매일같이 바가지 하나를 들고 나와 하수도 구멍 앞에 서서는 사동에서 똥덩어리 흘러나올 때만 기다리시는 거야.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 어찌나 우스운지. 똥만 걸렸다 하면(모두 미결수 똥) 그대로 퍼다가 호박이나 오이 밑에 퍼질러 놓으시는 거야. 똥이 물에 완전히 풀려서 나오면 그 물을 퍼다가 온 화단에 똥물 세례를 퍼붓고. 그러니 이건 꽃밭이 아니라 완존히 똥밭인 게야. 낮에 보면 꽃밭에 벌과 나비가 아니라 똥파리들만 득시글. 내가 제발 이파리 뜯어 먹는 상추랑 차 끓여 먹을 쑥에는 주지 말래도 막무가내야. 우리 사동 동료들 뱃속에 회충이 상당할 거야. 이런 말하면 회충약 먹으면 그만이래. 한번은 쑥잎을 뜯으려고 이파리를 헤쳤더니 웬 똥내가 코를 찌르는 거야. 들여다봤더니 그 속에도 똥덩이가 덕지 덕지. 아이고 미치겠다! 이러다가 쑥차가 아니라 영락없이 똥차 먹게 생겼다. 하기사, 어릴 적에 순 똥물을 퍼다 기른 "뚝섬갈비"만을 먹고 자란 나인지라 이런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거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고 먹는 거랑 알고 먹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선아, 뚝섬갈비가 뭔지 아니? 너는 그때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70년대부터 개발 붐이 일기 전까지 뚝섬 일대는 서울 시민들에게 야채를 공급하는 거대한 채소밭이었단다. 그 무렵에 밥 먹을 때는 밥상에 늘 퍼런 채소만이 나왔다. 고기는 특별한 날에만 먹었거든. 그래서 뚝섬에서 재배한 채소에다 제일 맛있는 갈비고기 이름을 붙여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부르곤 했던 것이지. 그때는 서울의 대부분 가정이 푸세식 화장실이어서 그것을 퍼다가 채소를 길러 먹었단다. 그래서 그 무렵의 아이들은 늘 횟배를 앓아서 얼굴이 노리끼리 했지. 사실 이런 위생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오물을 따로 버리지 않고 먹거리 생산에 이용했다는 점에서 생태환경적으로 보아 지금보다 나은 사회 시스템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