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뀌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참 예쁜 꽃- 무슨 놈의 더위가 수그러들 생각을 안 하는구나. 1급 태풍이 분다고 난리인데 어서 좀 왔으면 좋겠다. 좌우간 지금 같아서는 태풍이 보약이야. 요새 신문을 보면 이 끔찍한 더위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더라구. 어제 네덜란드에 사는 윔 잘(Wim Zaal)이라는 작가 친구로부터 엽서가 왔는데 얼마 전 그곳에서도 기상관측을 한 이래(1700년경) 최고의 기온을 기록했다고 하더군. 또 브라질은 영하 7도를 기록하여 커피 생산이 40% 정도 줄어들 것 같다니 이거 지구가 새로운 지질 시대로 돌입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여뀌를 그렸다. 동네에 따라 역귀, 역꾸라고 불리기도 한다. 밖에 나가면 개울가나 도랑에 지천으로 나 있는 게 여뀌인데 이상하게도 이 교도소 안에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씨가 무거워서 잘 날아다니지 않는가 보다. 오늘 운동장 후미진 곳에 난 강아지풀 사이에서 이놈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한 줄기 쑥 뽑아 와서 이렇게 너에게까지 인사를 하는 거다. 그려 놓고 보니 지금까지 그린 풀 중에 가장 맘에 들게 그려진 것 같다. 사실 여뀌는 이렇게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참 예쁜데 워낙에 무더기로 나니까 그저 귀찮은 풀처럼 보이는 거야. 이놈은 물을 좋아해서 항상 물가에 많이 난다. 어릴 적에 장마들어 족대 들고 고기 잡으러 가면, 으레 물에 잠긴 여뀌풀 속을 뒤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장마가 끝나 물이 빠지고 나면 여뀌 줄기에 걸린 비닐이나 헝겁쪼가리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아마 지금쯤 장안천 변에도 여뀌가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여뀌는 지혈, 타박상, 월경과다에 잘 들으며, 앞에 매운 맛이 있어 생선회를 먹을 때 곁들여 먹는다고 한다. 요즘 사회 돌아가는 것을 보니 문민정부의 통치수법이라는 것이 군사정부보다 한술 더 뜨는 것 같아 영 입맛이 쓰다. 우리는 흔히 후진국의 독재자들이 잘 쓰는 수법으로 3S 정책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독재정권에 순종적으로 길들이기 위해 영화(Screen), 섹스(Sex), 스포츠(Sports)를 의도적으로 활성화시킨다는 것이지. 브라질 이나 태국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분단국가인 우리는 3S가 아니라 4S로 지금까지 통치해 왔다. 또 하나의 S는 간첩(Spy)이다. 군사정권 이래 지금까지 끊임없이 결정적 순간 마다 발표되는 간첩사건(또는 귀순사건, 용공조작사건)이 그것이다. 이미 YS는 대선 전략의 하나로서 DJ에 대해 색깔시비를 걸어 정치적 치명타를 먹인 뒤 대통령이 되었다. 다시는 반복될 것 같지 않던 Spy 사건이 문민정부에 들어서서도 어김없이 계속되고 있다. 옛날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양상이 좀 다양해졌다고나 할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공안정국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막혀 말이 아니 나온다. 오늘도 신문을 보니 국회에서 웬 또라이" 같은 의원이 공안정국을 틈타 이름 한번 날려 보려 고 군내 주사파(군대 내부에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무리)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경향 신문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커다란 제목으로 간첩 4300여 명 검거라고 뽑아 놓았다. 마치 우리 사회가 간첩에 의해 완전 포위되어 살고 있는 듯한 인식을 주려했을까? 이것만 보아도 한국사회를 통치하는 데 있어 4S 중 하나인 Spy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사람이지. 나의 개인적 희생 을 통해 사회가 안정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역설적이나마 위로가 아니 되는 건 아니다. 제기랄! 날이 뜨거워 그런지 모기는 없는데 방안에 기어다니면서 무슨 벌레들에 의해 어찌나 많이 물렸는지 하루 종일 긁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침에 복도로 나오면 옆방 동료와 간밤에 몇 방 물렸나 세어서 경쟁하고 있단다. 현재까진 홍순이가 제일 많이 물렸는데, 물린 자국의 면적 은 내가 가장 넓을 거야. 긁어서 키웠거든. 아직도 범인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이만 줄인다. 으~ 가려워라.